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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서정주(박수호 시창작에서) 게시글 본문내용 자화상/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만냥 헐.. 2024. 3. 19.
우리동네 첫봄 산수유 나무꽃망울 3월 8일 그리고 한 주 후 그리고 5일 후 3일 후 3월 23일 좁쌀 같은 봄은 이렇게 피고 있었다. 오늘도 꽃샘바람은 이 좁쌀 봄의 낯바닥을 후려치고 저리 또 후려쳤지만 좁쌀 봄은 활짝 웃으며 봄임을 과시하더라. ^^ 2024. 3. 15.
우포늪 노을 우포늪 노을 우광식 촬영 2024. 3. 10.
틈 / 박상조 ㅡ 틈 ㅡ 박상조 어쩌면 우주 한쪽이 조금 벌어진 말 세상 밖에선 그저 실금이라고 어차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저 컴컴한 틈으로 꽃잎 한 장 떨어진다고 무슨 큰일이나 있겠습니까마는 누구든 사는 일이 이름 하나면 될 일을 풀씨는 또, 왜 그리 근질근질 모가지를 밀어 올리는지 영등포 저 어디쯤 상처난 벽지 속을 떠돌며 일생을 의역으로 살아온 돈벌레들도 여의도 저 어디 주차장 틈으로 주먹만 한 꽃봉오리를 치밀어 올리는 순박한 민들레들도 이것이 진정 저 바닥으로 그어놓은 금만의 일이겠습니까만 지금도 우리가 서 있는 이 지상의 모든 경계가 다 이름 없는 상처이듯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 함이 바로 상처가 아문 자리가 아닐는지 그저 우린 꽃입을 꼭 다물 뿐입니다. 2024.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