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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55

섬초 / 고경숙 시 지금 제주도 이중섭 거리에는...> . . 섬초 한 봉지를 샀는데 비금도가 따라왔다 해풍에 몸을 낮추느라 바닥을 긴 흔적시금치 뜯던 아지매가 깔고 앉았어도 모를 저 납작의 시금치들 식물 채집한 방학 숙제처럼 장난기 가득 모래가 한 줌이다 그것은 이파리 사이사이 별도 끼어 놀았다는 증거 초록의 시금치 한 봉지가 섬과 바다와 바람과 사람들까지 데리고 왔다 **페북에서 공유했습니다 ** 2023. 4. 19.
삶도, 사람도 동사다 삶도, 사람도 동사다 선禪에서 견성見性이라는 말을 ‘본성을 본다’는 뜻 대신, ‘보는 것이 본성이다’라는 뜻으로 새겨요. 시 또한 주어와 술어, 주체와 대상의 자리바꿈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 시는 자기 삶을 살아내고, 자기 죽음을 죽으려는 의지예요. 달리 말해 ‘살다’, ‘죽다’라는 자동사를 타동사로 바꾸려는 의지예요. ―이성복, 《무한화서》 시詩는 어떻게 쓰이는가? 산문과 비교해보면 특성을 살필 수 있다. 산문은 쓰는 사람의 말하고자 하는 바가 쓰여 있는 것이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나’를 주장하고 내세우고 호소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나’를 말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말하고 쓰고 많은 산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산문에서 주어는 당연히 ‘나’다. 그런 내가 때로는 너이기도 하고 그/그.. 2023. 2. 21.
프로출근러 프로출근러 / 이재훈 시 출근을 한다는 건 가장의 무게를 다시 짊어지는 것 퇴근을 한다는 건 가장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 것 부천에서 구로 구로에서 병점 24개의 역을 이동하는 나는 프오출금러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 하루 육분지 일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버스에 몸을 맡기노라면 굽은 멍에 매고 쟁기질하는 늙고 지친 소가 된다 '다녀올게' 한마디로 시작하여 사랑하는 가족 두고 48개의 역을 지나 멍애에 쓸린 몸 부여잡고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온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다녀올게' 한 마디로 갈무리해야 할 나는 프로출근러 ** 2022, 문학멘토링 시 클래스, 42쪽~43쪽 ** 멘토, 유미애 시인 감상문 / 김옥순 출퇴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시 화자의 '다녀올게' 인사에서 가족을 위함이 느껴지는 하루.. 2023. 1. 26.
자연의 벌레가 더 신성하다 자연의 벌레가 더 신성하다 지금 이 순간 안식일의 종소리가 저 멀리 골짜기에서 부서지고 있다. 종소리는 경탄을 자아낼 만큼 겸손하고 따뜻하다. 세상 곳곳에 퍼지는 이런 위선의 메아리는 교리문답이나 종교서적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무스케타퀴드 강의 종다리와 딱새의 울음소리는 다르다. 나는 귀뚜라미가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아직 깊은 밤이기나 한 듯 조용한 희망으로 울어대는 이른 새벽이 좋다. 이때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이슬에 젖어 신선하다. 귀뚜라미가 부르는 대지의 노래! 이는 기독교가 생겨나기 전부터 있었다. 삶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를 듣는 기분으로 자연의 소리에 경건히 귀 기울이라. 콩코드에는 노트르담교회가 필요치 않다. 우리의 숲이 훨씬 더 웅대하고 신성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헨리 데이비드.. 2023.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