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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이야기

'말무덤' 엔 어떤 욕이 묻혔을까

by 시인들국화 2013. 5. 16.

'말무덤' 엔 어떤 욕이 묻혔을까      이규섭 (시인, 칼럼니스트)

 

‘세 치 혀 밑에 도끼가 들어 있다’는 옛말은 도끼날처럼 섬뜩하다. 말 한 마디가 제 발등을 찍거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경고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구시화문(口是禍門)’ 또한 혀를 함부로 놀리면 설화(舌禍)에 휘말리게 된다는 경구다. 오감을 느끼는 혀는 감정에도 민감하여 입맞춤을 할 때는 말랑말랑 부드럽지만, 거짓말을 하려면 뻣뻣하게 굳어진다.


최근 중소 제과회사 회장은 승용차를 옮겨달라는 호텔 지배인에게 욕설과 폭력을 휘둘려 사회적 지탄을 받았고 운영하던 제과점 문을 닫게 됐다. 당사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종업원들은 직장을 잃은 설화의 피해자다. 대기업의 임원 또한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욕을 하며 얼굴을 잡지로 때려 비난의 화살을 맞고 물러났지만 기업 이미지가 훼손됐다. 세 치 혀를 제멋대로 놀렸다가 곤욕을 치르거나 철창신세를 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권의 설전(舌戰)은 국민을 편하게 하기보다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터넷에 판치는 ‘악플’은 명예훼손을 넘어 죽음으로 몰고 가는 ‘언어 폭력’이다.


망언과 폭언과 비난과 욕설이 판치는 시대에 험한 말(言)들을 파묻었다는 ‘말 무덤’을 산 교육장으로 단장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 입구의 말 무덤은 ‘병든 말(病馬)’을 묻은 곳이 아니라 분란의 불씨인 말(言)의 무덤, 언총(言塚)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말 무덤이 있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들었으나 가보지는 못했다.


400∼500년 전 각성바지가 모여 살던 이 마을은 문중간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야산이 ‘개가 짖는 형상을 하고 있어 마을이 시끄럽다’고 지적했다. 그가 내 놓은 예방책이 말 무덤이다. 실제 마을 야산의 이름은 ‘주둥개산’이다. 주민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한 끝에 미움과 원망, 비방과 욕을 사발에 뱉어 가져오라고 한 뒤 파묻었다. 그 뒤부터 마을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예천군지(郡誌·1987년)에 실린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다. 50년 전만 해도 주민들은 말 무덤에 제사를 지냈고, 1990년에는 마을 출향인사들이 앞면에는 ‘말 무덤’, 뒷면에는 한자로 ‘言塚’(언총)이라고 새긴 안내 비석을 세웠다. 주민들은 욱하는 감정이 생겨도 말 무덤을 떠올리며 말을 가려하게 됐다고 전한다. 사발에 뱉어낸 욕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예천군은 이색적인 유산을 언어 순화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관광자원화 하기 위해 1억5000여만원을 들여 ‘말 무덤 주변 정비사업’을 3월 말 마무리했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화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등 말과 관련한 격언과 명언을 자연석에 새기고 곳곳에 통나무의자를 설치하고 정자와 주차공간도 만들어 방문객들이 는다고 한다. 경박하고 험한 말 때문에 어지러운 세상, 말 무덤이 경계(警戒)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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