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
몸이 늘어져 풀죽같이 흐늘거렸던 며칠
이런 날에는 냉동인간으로 있다가
가을에나 해동인간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젯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활짝 열어 쟀긴 창 너머로 환하게 떠 있는 흰 구름을 보았다
마치 가을 하늘 파란 물결 위의 그 구름을
어쩐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을이 왔다는 신호인 듯하여
금방 시원해지는 느낌이어서 한결 편하게 잤는데
아침부터 들어오는 바람, 높아 보이는 하늘이 마음을 잡아
달력을 올려다보았더니 오늘이 칠석이네
덥고 짜증은 났었지만, 계절은 빠른 걸음으로 가고 오고 있었다.
이 날이면
마당 어귀에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에 누워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별을 세던 때가 있었지
이슬에 옷 젖는 줄도 모르고,
낮에는 남새밭 울타리에 대롱대롱 달린 몽실몽실한 애호박 뚝 뚝 따다가
지글지글 콩기름에 넓적하게 부쳐 채반 가득 담아다 놓고
그 한밤만은 명절처럼 놀았던 때도 있었는데
나이가 먹어가니 별것이 다 새롭고 그리워진다.
2013년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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