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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

by 시인들국화 2013. 4. 29.

목마와 숙녀

 

 

                                 박 인 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은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한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 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감상]

  이 시가 나왔던 시대와는 지금은 많이 변했다. 그러나 부유해졌고 편리해졌다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역시 새로운 불안과 위기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물질적인 가치가 정신적인 가치 우선하는 세태를 바라보면 허무와 절망 그리고 회의를 느낄 수 있다. “~해야한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시인의 마음은 절망과 허무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신문기사만도 못한……”이라고 말한 다른 시인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세상의 중심에 물질적 가치로 가득 채워진 것을 생각하면 또 다시 막막함이 밀려드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늦은 저녁까지 집에 돌아갈 줄을 모르고 분노하다가 절망하고 수없이 고개를 젓는 사람들의 약간은 슬픈 듯한, 분해하는 듯한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한다는 듯한 목소리가 골목 밖에까지 흘러나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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