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마무리
가을을 세워두고
배롱나무는 옷을 벗어 허리에 두른다
빨갛게 또 분홍빛으로 백일을 채웠다고
복숭아나무 아래로 해당화 열매 붉어지고
그 그늘 밑을 벗어나려 쭉 뺀 허리가 휘청이다
누워버린 도라지꽃 세 송이 마무리를 짓는 곳
죽었는지 뿌리째 옮겨갔는지 늦도록 모습을
안 보이던 상사화 가을비를 맞고 한 송이 피우더니
어느새 꽃을 지우고
무궁화 한 아름 피고 지고 한꺼번에 확 피고
박태기나무는 일찍부터 꽃을 피우더니
밥알이기 같은 열매를 한 후 큼 달고
서서히 가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호박꽃도 꽃이라고
수꽃 한 송이 하늘 눈치를 보느라
꼿꼿하게 세워 힘주는 동네 울타리
키를 올린 해바라기도 문 앞에 온 가을 앞에.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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