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크랩자료

[스크랩] 비유, 다른 사물에 빗대자

by 시인들국화 2013. 12. 2.

비유, 다른 사물에 빗대자

 

1. 비유의 전통

비유의 대표적인 양식은 직유와 은유입니다. 그러나 현대시에서는 은유를 보다 시적인 구조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은유가 직유보다 세련된 양식이라는 말이죠. 은유가 직유보다 일상적 의미나 정서에서 벗어나는데 적극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비유의 대표적인 구조는 유사성에 의한 형식입니다. 유사성은 두 사물 간 공통점、 비슷한 점、 등가성、 인접성、 동일성이라는 말로도 설명됩니다. 서로 다른 두 사물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인정하여 두 사물을 동일시하거나 등가성을 내세워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비유의 근거는 유추와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 또 는 연속성에 있습니다. 이것을 동일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동일성의 발견을 심리학 용어로 전이라고 합니다. 비유는 동일성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동일성의 서술입니다.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소주병」전문

인용 시는 아버지를 소주병으로、 그것도 빈 소주병으로 유추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희생과 늙어서 소외된 아버지를 빈 소주병에 비유한 것이지요、 값싼 소주병과 그 소주를 마시며 삶의 어려움을 고민했던 아버지와의 유사성을 연결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비어서 뒹구는 빈 소주병과 버려진 아버지의 동일화입니다.

시는 우리의 생각(관념、정신=늙어서 힘없고 소외된 슬픈 아버지)과 사물(빈 소주병)을 연결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일입니다. 비유의 동기는 인간의 마음과 외부세계를 결합하여 마침내는 동일화가 되고 싶어 하는 욕구입니다. 시적 세계관(시정신)의 본질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에 있으므로 비유적 언어야말로 가장 시적인 언어이며 시의 대표적 장치입니다.

루이스는 ‘시는 언제나 사물과 사물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우턴은 ‘비유란 회화적인 비교’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비교는 개성적이고 참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비유는 어느 한쪽의 의미를 변화시키거나 확장하여 의미나 정서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입니다. 비유는 인간의 유추적 기능에 있습니다. 유추는 한 대상이 다른 대상과 유사하거나 공통점이 있다거나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심리적 추리를 말합니다.

비유는 비유하는 대상과 비유되는 심상으로 이루어지는데. 비유하는 대상을 원관념、 비유되는 심상을 보조관념이라고 합니다. 비유는 대상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하여 다른 사상을 끌어다가 그 성격、 형태、 의미 등을 쉽고 분명하고 재미있게 나타내는 표현기법입니다.

* : 시적 대상

↓→〔의미나 연결이 일상적 방식일 때〕

일상적인 문장: 꽃이 피어있다.

↓→〔본래의 의미보다 구체화、 확대、 내면화 할 때〕

문학적인 문장: 꽃이 그녀의 미소처럼 웃고 있다

〔그녀의 미소처럼: 비유、 웃고있다:감각화〕

2. 직유

직유는 두 사물을 직접 비교하는 것으로 “너는 꽃잎 같다.”라는 어법입니다. 두 사물의 유사성、 상사성을 근거로 하여 본의를 구체화하는 것이지요. 언어학자 어번은 비유 가운데 직유는 사물의 표면적 유사성을 비유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표면적 유사성이 없어도 직유가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직유‘~같이、 ~처럼、 ~듯이、 ~인양、 ~같은、 ~만큼’ 등의 구체적인 연결아가 구문에 드러납니다. 두 대상 사이에 동질성에 가까운 연결어가 구문에 드러납니다. 두 대상 사이에 동질성에 가까운 유사성을 발견했을 때 직유를 사용하게 됩니다. 직유는 은유에 비하여 직접적이고 분명하며 단정적인 언술의 성격을 지닙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한용운「님의 침묵」부분)、 “물 먹은 별이、반짝、보석처럼 백힌다”(정지용.「유리창」부분 등이 그 예입니다.

김수영은 시「절망」을 직유법으로 구성합니다. “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김수영、「절망」전문) 직유는 이처럼 강하고 분명하며 긴장된 어조를 띱니다.

직유방식은 문법적인 언어 형식인 ‘~처럼、 ~같이、 ~만큼 등의 유사성을 알려 주는 조사 유무에서 찾는 것이 확실합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염소 같구나

네 이는 목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저마다 쌍둥이를 낳은 양 같구나.

네 입술을 홍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은 쌍둥이 노루새끼 같구나

-구약성서、 「아가4장」부분

인용한 시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가의 부분입니다. 직유의 어법을 빌어서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육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비유적인 사물을 통하여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다는 뿔뿔이

달어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 같이

재재발랐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이 앨쓴 해도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화동그란히 받혀 들었다!

지구는 연앞인양 옴으로들고……

-정지용、「바다」전문

흐르는 물처럼

네게로 가리.

물에 풀리는 알코올처럼

알콜에 엉키는 니코틴처럼

니코틴에게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네게로 가리

현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균처럼

삶을 거머잡는 죽음처럼

-최승자、 「네게로」전문

위 두 시는 화자의 시점이 다릅니다. 「바다는」는 드러난 화자와 청자의 생략이 있고、 「네게로」는 ‘너’라는 청자만 있습니다. 두 시는 직유를 사용하고 있으며 「바다는」‘도마뱀 같이’ ‘연잎인양’이 「네게로」는 ‘물처럼’ ‘알콜처럼’ 등등이 직유의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다」는 묘사중심의 감각적 직유방식,「네게로」는 서술 중심의 관념적 직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다」의 경우 언술형태는 묘사이며、 구조는 심상적 구조이고、 시점은 고정시점이며、 진술 종류는 객관적 묘사이며、 주된 비유는 직유입니다. 아래 「네게로」의 경우 시의 언술 형태는 진술이고、구조는 독백적구조이며、시점은 기원적시점이며、 진술 종류는 직접적 진술입니다.

비유는 동일성의 개념뿐만 아니라、 아래 시와 같이 차이가 있는 두 사물을 결합시켜 비유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차이성 속의 유사성을 발견하여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긴 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의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가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ㅇ느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는냐 우섭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시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전문

주제를 내포한 대표적인 문장이나 구절을 제목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 시는 가장 핵심이 되는 주제문(Theme sentence)을 그대로 제목으로 한 경우입니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논리적 유추로 충분히 설명되는 표층적 역설에 속합니다. “빼앗긴 들”은 인간적、 사회적 의미에서 국토를지칭하는 것입니다. “봄이 오는 들”은 자연으로서 들입니다. 따라서 이 시의 모순은 자연과 인위 사이에 노정되는 불합리를 언급한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시에서 차이성에 의한 비유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논길―가르마)

나.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종다리―아씨)

다.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머리털―삼단)

라. 살찐 젖가슴과 같ㅇ느 부드러운 이 흙을(젖가슴―흙)

위 직유들은 모두 서로 다르면서도 닮은 것끼리 결합입니다. 유사성의 발견은 언어이 중요한 기능이고、 여기서 비유의 시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물들 사이에서 동일성을 찾아내는 것이 시인의 직분입니다. 사물 간의 짝을 융합하는 상상력(생각해 내는 힘)이 시인에게는 필요합니다.

백석은 시「여승」을 통해 가난한 여인의 일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직유를 많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지요.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 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러진 날이 있었다.

-백석、 「여승」전문

일제 강점기에 어려운 삶을 살았던 여인의 일생을 축약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1연에서는 화자가 여승을 만났습니다. 여승에게서 가지취나물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화자는 그녀를 보는 서러워졌습니다. 2연에서는 여승에 대한 기억입니다. 평안도 깊은 산 금점판에서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 여인은 옥수수를 팔고 있었는데、 사는 것이 어려워서인지 아이를 때리며 서럽게 울었습니다. 3연에서는 돈벌러 나간 지아비를 십년이나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아마 못 먹어서 영향실조나 병으로 죽어 돌무덤에 묻힌 것 같습니다. 4연에서 가난한 여인은 생계를 위해 중이 되어 머리를 깎았습니다. 머리 깎던 날 서러워진 여인은 머리카락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직유를 많이 활용한 시입니다.

3. 은유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지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화 한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대사가 기억납니다. 주인공인 네루에게 시를 배우러 온 우체부가 묻고、 네루다가 대답합니다.

우체부: 선생님 시가 무엇입니까?

네루다: 시는 은유야.

물론 시는 은유로만 말하는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시인에 대한 가장 쉬운 정의는 ‘은유로 말하는 자’라고 이야기하면 무난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율은 가르칠 수 있어도 은유를 만드는 기술은 가르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배우거나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전재들ㅇ 자신도 자신이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설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예술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천재적 재능의 산물이라는 이야기지요.

은유라는 말은 희랍어의 Metaphora에서 왔는데、 이 말은 ‘넘어로’라는 의미의 meta와 ‘가져가다’라는 pherein에서 연유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바꾸어 부르는 명명의 전이양식으로 은유를 파악하였습니다. 새로운 사물을 경험했을 때 이것을 기술할 새로운 언어가 없어서 이와 유사하거나 이미 잘 알고 있는 다른 사물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은유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은유는 전이이고 전이는 유추、 곧 유사성입니다. 은유는 현대시가 갖는 특징이자 현대시가 구축한 출발점입니다.

웰렉과 워렌은 “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주요한 원리는 격조와 은유”라고 하였습니다. 하여튼 시인은 사물을 직접 말하지 않고 은유 등을 통하여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자라고 보면 됩니다.

은유는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어법입니다. 직유를 명유(明喩)라 하고 은유를 암유(暗喩)라고 합니다. A=B라는 관계입니다. 동일성의 비교입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같다고 서술하여 숨은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은유는 직유법에 비하여 대담한 비교가 필요합니다. 이 대담한 비교를 폭력적 비유라고도 합니다. 두 사물이 유사성을 발견하여 표현하는 직유와 달리、 “사람은 개다”처럼 본래의 의미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은유는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인식행위입니다. 은유는 단순은유와 복합은유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순은유는 a=b로 끝나는 가장 간단하고 초보적인 형식입니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라.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오.

잠깐 그대의 뜰에 머루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다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리라.

-김동명、 「내 마음은」전문

위 시는 다음과 같이 원관념을 보조관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관념

보조관념

내마음

호수

내마음

촛불

내마음

나그네

내마음

낙엽

위의 시는 단순은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호수’가 부분적인 동질성을 유지하면서 ‘마음’이 ‘호수’로 치환되며 의미를 확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과 ‘호수’가 부분적인 동질성을 유지하면서 ‘마음’이 ‘호수’로 치환되며 의미를 확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치환은유라고도 하는데 은유 원래의 의미를 다른 사물의 의미로 자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유사성 심상에 의한 자리바꿈입니다.

봄바람은 안기기 잘하는 나비

여름은 할퀴기 잘하는 곰

가을바람은 울기 잘하는 송아지

겨울바람은 뛰어 달리는 성낸 말

-황석우、「사계의 바람」전문

네 계절의 바람을 각각 나비、 곰、 송아지、 말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한 개의 원관념과 한 개의 보조관념을 대응시키고 있는 단순은유입니다.

복합은유는 비유하는 심상이 두 개 이상의 경우입니다. a=b、 a=c、 a=d와 같이 하나의 원관념에 두 개 이상의 원관념이 비유되는 것입니다.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눌러버렸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 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 다닌다

정신 좀 차려야지

고정관념으로 굳어가는 머리의

자욱한 안개를 걷으며

자、 차린다. 이제 나는 뜻밖이 거피를 마시며

돈만 넣으면 눈에 물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를

매춘부(賣春婦)라 불러도 되겠다

황금(黃金)교회라 불러도 되겠다

이 자동판매기의 돈을 긁는 포즈는 누구일까 만약

그대가 돈의 권능(權能)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대는 돈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 매음(賣淫)의 자동판매기가

한 컵의 사카린 같은 쾌락을 주고

십자가(十字架)를 세운 자동판매기는

神(신)의 오렌지 주스를 줄 것인가

-최승호、 「자동판매기」전문

사회적 상상력을 통해 돈 중심의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위 시에서 자동판매기는 매춘부이기도 하고 황금교회이기도 합니다. a=b、 a=c의 형식이 됩니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상호작용입니다. 이 상호작용을 통해서 언어는 의미를 넓혀갑니다.

휠라이트는 은유는 철저한 존재 전환이고 의미 전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은유방식으로 치환은유(자리바꿈)와 병치은유(마주보기)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은유 개념을 치환은유란 용어로 기술하였습니다. 치환은유는 3가지가 있는데, 단순은유(하나의 원관념에 하나의 보조관념이 연결), 확장은유(하나의 원관념에 두 개 이상의 보조관념이 연결), 확장은유(하나의 원관념에 두 개 이상의 보조관념이 연결), 액자식 은유(은유 속에 은유가 들어 있는 것)가 있습니다.

치환은유가 전통적인 은유라면 병치은유는 새로운 은유 형태입니다. 병치은유는 마주보기 형식으로 유사성과 동일성을 갖지 않는 대상들이 당돌하게 마주보면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 결합의 형태이다.

병치은유는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의 자리바꿈이 아니라 두 사물을 그냥 대조적으로 배치해 놓은 것입니다. 서로 유사성이나 전이성을 배제하고 각각 독자적으로 비동일성, 비친숙화의 폭력적 배열인 것입니다.

군중 속의 얼굴들이 환영

촉촉이 젖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잎들

-에즈라 파운드, 「지하 정거장」 부분

이 작품에서 주제어가 되고 있는 것은 ‘환영들’과 ‘꽃잎들’입니다. 이들 주제어는 치환은유처럼 주지와 매체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리라 각각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병치은유는 순수하게 이질적인 두 요소를 나란히 조합해 놓은 것을 말합니다. 두 개의 요소가 서로 대응하게 작용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사성이나 연접성에 의거하여 표현하지 않고 돌발적 경험을 제시하는 특수성에 의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병치은유에서는 유추 가능한 상상력의 실마리가 문맥상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표현이 아니라 제시적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독특한 상호관계를 맺고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킵니다. 당연히 독자는 시를 낯설게 받아들이게 되며, 당연히 그 충격이 더 크다고 하겠습니다.

한국 현대시에서는 김춘수의 무의미시, 이승훈의 비대상시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병치은유는 일상적이고 논리적인 의미를 배제하자는 원리이며 예술을 독자적이게 만드는 원리입니다.(『문학비평용어사전ㆍ상』, 809~810쪽 참조)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화남. 2009.

출처 : 박수호시창작교실
글쓴이 : 박수호 원글보기
메모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