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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부 - 음성분별법

by 시인들국화 2013. 7. 24.

 

1. 하나님의 음성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음성과 다르며 우리가 대화하는 방법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사야 55장 8-9절에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의 음성과 다를 뿐만 아니라, 종종 하나님 자신도 우리가 쉽게 거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백마를 타고 오는 왕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구유에 누운 아기로 오셨다. 우리가 확실한 성경 본문을 기다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희미한 꿈속에서 오신다.

우리가 완전한 이해를 원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부분적으로 예언하고 부분적으로 알게 하신다(고전 13:9).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방법과 음성은 우리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분별하기가 쉽지가 않다.

사람들은 예언자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경우 그의 예언이 실현되는 여부를 보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것이 꼭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을 하였다.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 18;7-10).

 

하나님이 저주나 축복을 내리려고 계획을 하시고 선지자를 보내어 예언을 하게 하여도 저주나 축복을 받을 대상들이 회개를 하고 돌이키거나, 축복을 받을 짓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나 축복이 취소된다는 것이다.

요나가 니느웨에 대해 예언할 때에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요나는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예언했다(욘 3:4). 요나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강퍅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를 하였고, 요나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경우 당신은 요나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예언이 아니라고 말하겠는가?

요나의 경우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온 음성이 아닌데 거짓 예언이나, 기사 표적이 실현될 수도 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신명기 13:1-3절을 읽어보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하나님은 거짓 예언자들의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거짓 예언자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은 배후에 있는 귀신의 힘 때문과 발언자의 교묘한 조작 때문에, 또는 그저 우연히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단순히 예언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가짜와 진짜를 분간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 이유는 요셉의 꿈은 13년 후에 이루어졌다. 또한 이사야의 예언은 700년 후에 이루어졌다(사 52:13-53:12). 그러므로 예언이나 꿈의 성취 여부로 하나님께서 온 것이지 아닌지 알 수 있기는 애매하다.

때로는 앞에서 말을 했듯이 하나님의 음성과 정 반대의 현실을 맞이할 수가 있다. 다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의 저자 조이 도우슨(Joy Dawson)이 경험한 예이다.

 

“내 친구 중 한 명이 불치의 병으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하실지 말씀을 통해 알려 달라고 부지런히 구했다. 성경 구절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명확히 주어졌는데, 그분의 응답은 ‘고치리라’였다.

그 친구가 죽었을 때 난 크게 충격을 받았고 혼란스러웠다. 하나님의 설명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때 내 영 가운데 분명히 말씀하셨던 그분의 응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난 네게 말했고 너는 내가 말한 바를 공개적으로 말함으로써 내게 순종하였다. 하지만 내가 네게 말한 이후 네 친구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너는 알지 못하잖니.”

 

위와 같이 하나님이 처음 말씀하셨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받은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식별하는 시험 방법으로서 성취를 강조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6-18)고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나, 못된 나무는 결과인 열매는 맺었다. 예수님은 그 결과들을 지켜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만일 그 음성이 주님의 것이라면, 그것은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좋은 결과를 이루어 낼 것이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갈 5:22-23).

 

예수님은 그 음성의 열매를 관찰하라고 하시면서 어떤 사람의 삶이나 사역을 시험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법을 제공하신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어디에 가든지 우리의 삶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주장하지만 우리가 가는 곳마다 신자들 가운데 싸움과 분쟁과 질투가 생긴다면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보편적으로 시원한 바람처럼 평안함과 평안을 주고 힘과 용기를 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모양으로 음성을 주시든,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면 우리의 영에 강한 확신과 마음에 평화가 올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말씀하시고,

뿌리깊은 평화와 기쁨을 주신다. 하나님의 음성은 비난 투로 말씀하시지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실 때조차 넘치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절대로 자존감을 훼손시키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격을 무시하시는 말투를 쓰지지 않는다.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고쳐 주시되 절대로 우리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지 않은 죄는 지적하신다. 그러나 이미 회개한 죄는 다시는 지적하시지 않으신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성품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

주어진 문제를 놓고 기도하도록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거룩하지 않는 방법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나 비난하거나 왕따시키는 일을 지시하지 않는다.

또한 사랑 없이 행한다거나 삶의 동반자나 가족들의 사랑을 감소시키는 일을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은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에 방해가 되거나,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부담감을 감소시키는 말씀은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은 주님의 지체들로부터 스스로 격리시키는 일이나, 하나님을 욕 되게 하는 일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갖도록하는 일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 주어며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스바냐 3:17절의 말씀이 온 마음과 영으로 느껴질 것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라라.”

하나님은 당신이 하나님을 찾는 것만으로 너무나 기뻐하시며 당신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그 사랑이 느껴진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이 흐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기도를 하라.

요한 계시록에 있는 일곱 교회에 주님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계 2:7; 2:11; 2:17; 2:29; 3:6; 3:13; 3:22)라고 말씀하셨다.

 

이사야도 하나님께서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 50:4) 말을 하였다.

당신도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들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하여야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그 음성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박국 2장 2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받은 것을 기록하면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말씀인지, 아니면 생각인지, 아니면 사단이 준 것인지를 확인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 질 때 당신의 믿음은 더 한층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기록한 자료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2. 자아의 소리

 

우리 자신의 소리는 자기 연민과 자기 의로 가득 차 있고 육신의 욕망을 채우고 싶어한다. 때로는 우리의 호기심 때문에 우리가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기를 요청한다.

 하나님께 요청할 때, 우리는 잘못된 동기가 없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기적 자신의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말하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 우리의 욕심은 하나님과 사랑의 교재를 나누면서도 선악과를 따먹는 원죄가 아직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마라.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언 3:5).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시편 94:11)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렘 17:9).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줄 때는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까? 아니면 나에게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에게서 왔다면 무엇을 의미하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분은 기도 중에 자기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물론 나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성령님의 느낌을 말했을 때이다.

그러나 대 다수의 경우는 자기의 욕구와 욕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자기의 기도를 관철시키려고 할 때와 남에게 신령하게 보이고 싶어 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런 현상이 나올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나중에는 자기 스스로도 속는다.

조심하라. 그러다가 귀신이 들어온다.

 

3. 사탄의 음성

 

마귀는 흉내를 내는 것에는 천재다. 그러므로 속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정신병원에 가면 혼자서 누군가와 중얼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악한 영의 속삭임에 빠져 강간, 학대, 살인, 자살을 시도한다. 더욱 문제가 복잡한 것은 이 사악한 귀신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속임수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에게 말씀을 듣는 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다.

 

어는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2층에 있는 정신병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소리지르자.

1층에 있는 정신병자가 외치기를 “나는 너와 같은 아들을 둔 적이 없다!”라고 하더란다. 마귀는 이렇게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들린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지 마귀의 음성인지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귀의 목적은 당신의 축복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다(요 10:10). 그래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신을 공격할 것이다. 사탄의 음성을 구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탄의 음성은 네온사인 불빛처럼 번쩍거리고, 화려하게 들린다고 한다.

마귀의 소리를 들으면 마치 최면술에 걸린 듯한 기분이 든다. 의지력이 약해지고, 행동을 절제하기 힘들게 된다.

 

둘째, 사탄의 음성은 당신이 서둘러 결정을 내리게 유혹한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 생각할 틈이 없고 기도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여 실패의 쓴잔을 마시게 함이다.

사울 왕은 성급하게 행동을 함으로써 왕위를 잃게 되었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을 하였다. 그는 사무엘의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으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써 제사장의 직권을 월권하고 쓰딘 쓴 비극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삼상 10:8이하 ).

 

셋째, 사탄은 이미 회개한 죄를 들추어낸다.

사탄은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 고백하고 회개한 과거의 죄를 들추어내는데 명수이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에 죄에 대한 가책을 주어 스스로 죄를 거부하게 만들고 회개하게 만들지만, 사탄은 과거의 죄를 들추어내어서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여 죄를 진 아담과 하와처럼 숨게 만든다.

넷째, 사탄은 “네가 느끼고 생각하는 데로 행동을 하라. 그것이 정직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탄은 하와에게 “네가 느낀 데로 먹고 싶으면 먹어라 그것이 정직한 것이라다”라고 말을 하면서 유혹했다. 창세기 3:1-4에서 사탄과 이브의 대화를 보도록 하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 라.”

사탄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와야, 이 일에 대해 좀 더 현명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지 않니? 물론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했지. 그렇지만 그렇게 일방적인 견해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거야. 너를 믿어! 네가 느끼고 본데로 행동을 해! 사실, 넌 반드시 죽지 않을 거야.”

모든 거짓말의 아버지인 사탄이 교활하고 능숙하고 미묘한 거짓말로 이브를 속였듯이 우리들도 속일 것이다. 사탄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우리를 속이려 들고 있다.

“설마 너희 부모처럼 되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너희 부모는 전혀 다른 세대에서 성장했어. 그들은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교회에 다녔던 거야. TV도 없고 재미있는 유흥거리도 없었던 그 시대에 사셨기 때문에 교회에 가는 낙으로 살았지만, 그렇지만 너희들은 전혀 다른 세대이고 세상은 변했어. 너희들은 너희가 느끼고 생각하는 데로 살아. 그것이 자유야.”

이렇듯 사탄은 당신에게 당신이 마음으로 느끼는 대로 행동을 하라고 속삭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마음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했다(렘 17:9).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대로 행동에 옮긴다면 하루에도 셀 수 없는 범죄가 저질러 질 것이다.

다섯째, 사탄의 음성은 교만하게 만든다.

사탄은 이브에게 교만함을 자극하여 유혹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그러나 여기에서 사탄은 다음과 같은 말을 살짝 빼버린 것이다.

“이브야, 네가 선악을 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같이 되지는 못한다. 너는 이 날을 증오하게 될 거야.”

 

사탄은 이렇듯 현란한 속임수로 우리 속에 있는 교만을 자극하여 죄를 짓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으면 사탄의 음성을 듣게 되어 평생을 후회하는 어처구니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사탄의 음성은 너는 스스로 무엇인든지 할 수 있다고 속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질문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이 속임수에 속아서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려고 한다.

이는 마치 3살짜리 꼬마가 운전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아빠에게 운전을 지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듯 사탄의 음성은 당신을 교만하게 만들 것이다. 그 음성을 들으면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언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있단 말이야! 빨리 빨리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해야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어. 내 수준도 낮아 보이잖아. 이제는 그런 사람을 무시해야 되겠어.”

 

여섯째 사탄의 음성을 들으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사람들을 의식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사울 왕이다. 사무엘 15장을 보면 사무엘은 사울에게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는 임무를 따워 보냈다(3절).

그러나 사울은 가장 좋은 전리품 몇 점을 남기고 왕의 목숨을 살려 둔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그러한 불순종이 드러나자 사울은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울은 하나님보다는 백성들을 의식하여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하다가, 아말렉 족속과 그 왕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원래 명령에 대한 통찰력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결과는 비극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마귀의 음성을 듣고 속아넘어가게 되며 자신이 사망의 골짜기로 가는 것도 모르고 교만해지고, 매사에 일을 결정할 때도 영이 아닌 육체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게 된다.

좋지 않은 결과를 보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되는데 오히려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환경을 탓하고 주위 사람을 탓하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 결과 성령의 열매가 아닌 죽음의 열매를 맺어 자신 뿐 아니라 주의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안겨 주고 상처를 주며 하나님의 예비 된 축복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일곱째, 사탄의 음성은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고 책임전가를 합리화시킨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질문하셨다(창 3:11).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아담이 대답한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 그는 만물만 다스려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도 진리로 다스려야 할 책임이 있었다.

설사 화와가 선악과를 먹자고 권했어도 그는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죄의 유혹을 뿌리치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자신의 사명과 의무를 망각하고 죽음을 택하고 하와를 비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하와에게 질문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이에 대한 여자의 대답을 보라.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마귀의 음성은 이렇게 상대를 비난하게 하며,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시키게 한다. 자신이 외도를 하고서도 사탄의 음성을 들으면 이렇게 말을 하게 된다.

“내가 사과를 할 필요가 없어. 내가 바람을 피운 것은 그 인간이 나를 만족 시키지 못해서 그런 결과를 초래하게 한 거야.”

여덟째, 사탄은 당신이 1인칭을 써서 비난하게 만든다.

사탄은 당신을 비난할 때 2인칭을 써서 “너는 못났어” “너는 가망이 없어”라고 말하지 않고 1인칭을 써서 “난 못났어” “나는 가망성이 없어”라고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말하는 자신이 스스로의 생각인 것처럼 믿게 만들어서 실패와 좌절감을 느끼게 만든다. “네가 가서 그 사람을 못 믿겠다고 말해.”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가서 그 사람을 못 믿겠다고 말해야 되겠어.”라고 말하게 한다.

 

사탄의 대표적인 음성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힘들게 살 바에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좋아. ”

“ 나만 정직하면 무엇하냐. 다 거짓말하고 사기치는데.”

사탄은 ‘항상’이라는 말과 ‘결코’라는 말도 자주 사용하게 한다.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이 모양 이 꼴이 된단 말이야.”

“나는 결코 성공할 수 없어.”

“하나님은 나 같은 것은 결코 사랑하지 않을 거야.”

사탄은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다고 말을 한다.

“하나님은 결코,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속마음을 아시면 결코 나의 기도에 응답을 하시지 않을 거야.”

 

아홉째, 사탄은 결코 우리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굶주리고 있음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갈증,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욕구,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싶어하는 욕구, 능력있는 기도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욕구들에 대하여, 사탄은 결코 일깨워 주지 않는다.

 

열번째, 사탄은 사람들 간에 시기와 질투를 일삼고 이간의 음성을 들리게 한다.

 부부, 친구, 성도의 잘못과 약점을 지적하며 서로 상처로 입혀서 떼어놓으려고 한다. 특히 축사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귀신의 말을 다 들으면 안된다.

어떤 분은 축사 사역을 할 때에 귀신이 그의 아내와 통간을 했다는 거짓된 말을 듣고, 집으로 아내를 찾아가서 대판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귀신이 무슨 거짓말을 하지 못하겠는가? 예수님은 귀신을 거짓의 아비라고 했다(요 8:44).

내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개척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때의 일이다. 그 때는 잦은 금식과 충분한 영양 보충을 하지 못해서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친교 때문에 점심 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몇몇의 동기 목사들과 교회 주변을 거닐었다. 그때 휠체어를 탄 여자 걸인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옆에 처녀 귀신이 있네.” 내가 보기에는 한 눈에도 그녀에게 더러운 귀신이 붙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목사들은 그녀가 무슨 신령한 능력이라도 있는 것으로 감탄을 하는 눈으로 보고, 나에게는 의혹과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는 것이다. 황당하고 답답했다.

 

황당한 것은 귀신의 거짓된 공격이었고, 답답한 것은 목사들이 너무나 영적인 일에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거짓된 영들에게서 양들을 보호해야 할 목사들이 너무나 영적인 일에 무지하다는 것이 답답하고 걱정이 되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까지 가서 참소를 하는 사단이 어디인들 가지 못하겠는가? 욥을 그렇게 참담한 지경까지 몰고 간 것은 사탄의 참소 때문이었다.

그 때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 섞여서 하나님 앞에까지 같다. 말씀을 확인해 보자.

욥기 1장 6절을 읽어보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이제 믿어지는가? 욥 뿐만 아니라 스가랴 3:1-2절을 보면 이 사단은 하나님 보좌 앞에 서 있는 사자 옆에 서서 여호수아를 참소하는 것이 나온다. 이렇듯 사탄은 하나님 앞에까지 간다.

귀신이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귀신은 예배를 드리는 당신 옆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사람의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들어간 귀신이다.

사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으면 1부의 「사탄을 결박하라」를 좀더 참고를 하시기 바란다.

마귀는 우리가 기도를 할 때에도 거짓된 생각을 심는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들이 마음에 들어오면 빌립보서 4장 8절 말씀을 근거하여 하나님의 진리와 일치하는가를 비교하여 거짓된 마귀의 소리를 거부해야 한다.

빌립보서 4장 8절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참되며 무엇이든지 경건하며 무엇이든지 옳으며 무엇이든지 정직하며 무엇이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이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만약에 기도할 때에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들었다면 다음과 같이 확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생각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경건한가? 옳고 정직한 일인가?

만일 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그 결과가 아름답고 내 생애에 자랑할 만하고 보람된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 다른 신자들이 나의 행동을 인정할 것인가?

이 일을 했을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까?”라고 질문을 하라.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아니라면 그 생각은 즉시 떨쳐 버려라.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아니라 사탄이 몰래 뿌린 죽음의 씨앗이다.

계속해서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예수님 이름으로 “나에게 거짓된 생각을 뿌리는 악한 영은 떠나갈지어다!”하고 대적하라 그러면 악한 생각이 떠날 것이다.

 

사탄이 준 악한 생각은 우리가 길을 가고 있는데 골목에서 뛰어 나와서 우리의 다리를 물고 놓지 않는 개와도 같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께 내가 죄를 지어서 개가 내 다리를 물고늘어집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회개를 하겠는가. 회개의 기도를 하는데도 개가 여전히 당신의 다리를 물고늘어지고 있다면? 이럴 때는 “아,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개에게 물렸구나!”라고 나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개를 발로 차서 쫓아야 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4장 7절은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권면한다.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향하여 직접 명령을 하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죄를 짓고 철저하게 회개를 해도 그 죄의 습관이 고쳐지지 않으면, 마귀가 당신의 바지를 물고늘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는 악순환을 버리고 성경의 공식을 따라 마귀를 대적하라.

“욕심의 귀신아 나에게서 떠나라!”

“정욕의 귀신아 떠나라!”

 “나를 비난하면 낮은자존감을 갖게 만드는 악한 영아, 나에게서 떠날 찌어다!!”

“하나님의 음성을 가장하여 나에게 거짓된 음성을 주는 귀신아 떠날 찌어다!”라고 대적을 하라.

그러면 사탄의 거짓 음성에 속지 않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셨다. 당신이 책을 읽기도 전에 책 두께 때문에 질릴까 봐서 그나마 200페이지를 줄인 것이다. 단순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만 설명을 했으면 한 두 페이지이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책의 분량이 많아진 것은 당신에게 단순하게 칼을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칼의 도를 가르치고 싶어서였다.

단순하게 칼을 쓰는 법을 배우면 사람을 죽이는 칼잡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칼의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치유와 신앙의 성숙이 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만 배우면 예수 장사꾼 밖에 되지 않는다.

교육 이론에 의하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완전히 숙지하려면 그 내용을 200번 정도 반복해서 들고 실습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당신이 꾸준한 노력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과 같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이 되고,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 세대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 드린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성령님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할렐루야! -끝-

* 여기까지 함께해 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의 블로그에 하루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보통 20명에서 많게는 50명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시고 오시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음성과 치유, 그리고 임 목사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방문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확실히 듣는 법>의 원고를 읽으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을 철저하게 성경을 바탕으로 썼다는 것을 말입니다.

임 목사가 결코 결코 신비주의 목사가 아니며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목사가 아님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비난하는 자가 이 책의 의도를 왜곡하고 있으며 바리새인처럼 야비하고 교활하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믿되, 바리새인처럼 어리석게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처럼 하나님을 믿으면 그들 눈앞에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데 앞장을 서는 패악을 저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십시오.

그분은 늘 당신과 교제하시기를 사모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정말 당신이 다윗처럼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이 되고 좋은 친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다음 주 부터는 2008년에 바울출판사에서 출간한 <자기 양육>을 올리겠습니다.

 

 

 

출처 : 하늘시인 임종천
글쓴이 : 하늘시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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